...+68+45
=509,513

 여기에 덧붙이는 글.


  1. 세상에 CIA보다 많은 것을 아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사실은 예로부터 본질적으로, 지도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다. 그것도 개중 가장 단순하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인 축에 드는 데이터. 지도가 정보가 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거기에 정말 시시콜콜하게 누가 어디에서 뭘 한다가 다 적혀 있거나, 아예 전인미답의 땅의 지도이거나.

  2. 사실 이 나라에서는 지도라는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뽑아내는 사고력을 발휘할 일이 퍽 드물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한 동네의 사회지리적 정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그 동네 전담 택배 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소리.

  3. 초딩들의 휴대폰으로도 GPS를 잡는 오늘날 “기밀 군사지도”는 형용모순에 가깝다. 기밀 지도란 결국 정보 비대칭성으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의 핵심 요소인데, 현대 전술에서 정보 비대칭이 뭐 얼마나 큰 변수인가? 핵미사일 개수가 진짜 변수지.

  4.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효자동 뒤에 있다), 국정원이 어디 있는지(헌인릉 뒤에 있다), 서울화력발전소가 어디 있는지(상수동 뒤에 있다)를 지도에서 숲 이미지 합성시켜 누락시키는 게―네이버는 진작부터 그렇게 했고 다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치고 있다―과연 군사 안보일까?
    진짜 군사 안보란 건 지구상의 위도-경도 좌표로부터는 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그라운드 제로 사방 5km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핵심 정보와 지휘권과 전투력이 손망되지 않게끔 하는 일이 군사 안보 아닐까? 다른 예를 들자면,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와서 관광하고 구경하고 다 하지만 국가 기밀은 기밀대로 잘 지켜지는 그런 것이―백악관이 그렇게 하는데―군사 안보가 아닐까?

  5. 지도 유출을 두려워하는 논리의 기저에는 특정 장소에 외부 유입이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건 보안도 아니고 전투도 아니고 그냥 농성이다. 산성 쌓고 들어가서 문 닫고 스텔스 위장막 쫙 펴다 놓고 그저 버티는 복지부동 말이다. 지도가 단지 데이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마인드셋이 정립돼 있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그 점이 우스울 따름이다.

  6. 그나마 오늘날 지도 데이터는 민간이 상업용으로 만드는 것이 태반이다. 그 지도에도, 버스 정류장들 이름 다 참고해서, 어느 군부대 앞인지 몇 사단 예비군 훈련장인지 대충 다 써 있다. 이래도 지도가 그렇게나 국가의 안보에 치명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휘통제소 천막에 쪼그리고 앉아 아세테이트지에 소대 마크 중대 마크 그려넣기 바쁜 높으신 분들의 전쟁놀이를 위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뭔가?


에효 모르겠다. 바닷가 마을이니까 물 포켓몬 등장 확률 UP 같은 게 데이터에서 정보 만들어내는 발상인 건데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런 걸 하겠나. 구더기가 그렇게 무섭다는데 장은커녕 김치 한 포기도 담그지 말아야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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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개편 좀 하고 가실게요


요즘 내껄 너무 안한다 싶어서 한번 해봄. 아닌게아니라 종편가시내들은 초기 디자인이 너무 구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네모토끼 페이지에 자극받아서 업데이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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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25를 순전히 도시락 때문에 간다.

학교에 편의점이 GS25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김혜자의 MOM 도시락 브랜드가 런칭되기 전에도 GS25는 원래 도시락을 잘 하는 업체였다. 내가 ‘아 이제 가급적 GS25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무렵, 편의점 도시락은 대체로 2500~3500원 선이었다. 싸게 먹으면 2800원, 큰맘먹고 좋은 것 집으면 3500원, 혹은 싼 것에 음료수 할인구매를 붙여서 3700원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GS25의 ‘갓혜자’ 도시락들은 전부 3000원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이 어찌된 귀신 곡할 노릇인지 지금도 그 영문을 모른다. 도시락 하나를 삼천 원 넘게 받고 주는 게 무슨 ‘갓혜자’인가? 누구 말마따나 어디 가서 밥버거 두 개를 배부르게 먹을 돈일 뿐더러, 삼각김밥 3개를 사도, 아직은, 삼천 원이 넘지 않는다. 그런데 부르기로는 여전히, 도시락 하나가 3000원에 좀더 푸짐해졌다는 이유로 ‘혜자스럽다’라는 말을 만들던 그 시절의 감각 그대로, “갓(god)혜자 상품”이라 부르고 있다.

아니, 사실은 무슨 영문인지 잘 안다. 사실은 이것 비슷한 사태가 나라처럼 생긴 이 지옥 반도 사방에서 가열차게 일어나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공급자에게서, 기업에게서, 자본에게서 상품과 서비스와 인간적 규모의 합리성을 구하지 않는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만 둘러보면, 도대체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구하고 있는 것은 ‘은혜’다. 그것도, 거의 자선에 가까운 은혜.

잠시 은혜라는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독교적 용어의 은혜란, 창조주적 존재가 피조물적 존재에게 별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 또는 그 결과의 소득을 의미한다. 두 가지 핵심은 영향력 관계의 절대적 일방성, 그리고 타당성 확인 없이 임의적으로 (arbitrarily) 주어진다는 점이다. ‘선물’에 자주 비유되는데, 그러므로 받는 쪽은 주는 쪽에게 원칙적으로 요구를 할 수 없으며, 주는 쪽의 호의에 감사하는 것이 받는 쪽의 할 일이고, 주어지지 않거나 다소 엉뚱해 보이게 주어지더라도 혼자 꿍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은혜 관련 교리의 핵심이다.

이 교리는 그야말로 교리, 신앙, 종교의 차원이기에 성립한다. 다시 말하자면, 영향력 관계가 절대적으로 일방적이기 때문에 그 선물은 ‘은혜’가 되는 것이며, 그 선물을 주는 이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로,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 안의 진흙으로 인정된다. 일상적 차원의 ‘선물’이 은혜와는 엄연히 실천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선물이란 때로는 받는 쪽으로부터 요구되기도 하고, 주는 쪽이 일종의 책무를 가지는 경우가 상황 맥락에 따라 있을 수도 있잖은가. 그것은 사람 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감히 사람이 베풀 수 없어 보이는 크나큰 호의가 베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참고로 은총은 은혜의 다른 말이다.)

이 시점에서 잠시 편의점 도시락이란 게 뭔가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편의점 도시락을 GS25로부터 선물받는가?

아니. 돈 주고 산다. 바싹불고기도시락을 진열장에서 꺼내서 계산대에 올려놓을 때, 누구도 ‘구하옵나니 제게 이것을 내려 주옵소서’ 빌지 않으며, 바코드가 두어 번 찍힌 다음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질문을 받았을 때 황송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데 무슨 놈의 선물이야? 우리는 오히려 포장지에 쬐끄맣게 붙어 있는 “음료 무료 제공” 광고를 귀신같이 확인하고 “이거 사면 OOO 주시죠? OO맛 있어요?” 너무나 당당하게 묻는다. 굳이 다시 한 번 반복하여 그 당연함을 조금 벗겨내자. 우리의 구매 행위는 단 한 번도 선물을 받거나 은혜를 입는 과정이었던 적이 없다. 거기에는 지불, 제공, 그리고 그 거래 바깥의 사회적 합의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요소만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왜 값싼 도시락을 파는 (것으로 선전되는) 이를 일종의 ‘신(god)’으로, 그 도시락을 은혜로 받아들이는가? 뭐 간단하다. 돈이 신이거든.

굳이 물신(物神, mammon)이 뭔지를 백과사전 뒤져서 설명할 것도 없다. 그 설명들은 밥값 몇천 원과 보증금 몇천만 원을 겪어 보지 못한 형이상학적 서술이기 때문에 별로 설명력이 없다. 물신은, 배금주의나 수전노적 행태의 숭배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허구적으로 부여받은 신적 권위를 실제적으로 행사하는 가치 저장 체제라는 차원에서 신이라 불릴 따름이다. 초고도로 발달한 신고전적 시장 경제 체제에서, 이 허구적 권위는 정말 그럴듯하게 부여된다.

돈님께옵서는 자기의 권능을 내보일 때는 저 멀리 무슨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강남 어디의 전세집 같은 곳에서 자신을 한없이 높여 감히 사람이 거역치 못할 온갖 위력을 떨치다가도, 가끔은 낮고 천한 편의점 같은 곳에 임하셔서 우리의 몇천 원 푼돈의 노력으로도 한 끼 밥을 배부르게 먹게 해 주신다. 개념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지만, 큰 의미에서 보면 물신이 관통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같은 상황이다. 적어도, 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는 점은 확실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력하다. 백날 모으는 ‘포인트’가 티끌 모아 티끌인 것도 문제지만, 돈님의 진노 앞에 우리는 하룻밤 들꽃처럼 시들어 버릴 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는, 돈님께서 그 은총을 거두시면 누구나 즉시 춥고 배고프고 정처 없는 신세가 된다. 도시가스 민영화에 따른 가격 합리화! 프리미엄 건강 혜리 도시락 4900원! 사람 세 명 누울 월세방 하나가 1000에 70! 정말이다! 모세가 노래한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잘 모르겠지만, 당장 우리가 돈을 우리 통장에 모시지 않으면 무슨 참혹한 형벌이 주어질지는 넘나 명백한 것!

그리고 이 와중에 굳이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가자면, 돈을 써야 쌓아서 쓸 수 있는 ‘포인트’는, 그리고 “합리적 소비”니 “절약”이니 하는 것은, 사실 모두 그저 ‘노오력’ 환원주의의 결과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하등 다를 바 없으며, 그러므로 아무 희망도 대책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냥 논의하지 말자. (절대로 방금 GS POINT로 펩시 하나 사먹고 왔더니 포인트가 확 줄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뭘 논의해야 하느냐고? 뭐긴 뭐야, 우리가 “갓혜자”로부터 은혜 대신 사회적으로 정당한 거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를 논의해야지. 다시 말하자면, 물신을 거꾸러뜨려 돈이 단지 돈이기만 하도록 만들 방안을 찾아야지.

음,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달리 말하자면, 시장 가격이 오르내린다는 이유로 그 대상 상품의 실제 가치가 쉽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다.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도시락 하나가 몇십만 원을 호가할 이유는 하늘땅별땅 요만큼도 없다. 도시락에 금가루 뿌리고 영양제 섞으면, 한 사람 한 끼 밥이라는 본질이 갑자기 확 달라지는가? 그래서, 일반론의 차원에서야 천부당만부당하지만, 본질적 효용 총량의 jump가 일어나지 않는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최고가격제가 유효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도시락이 그렇고, 고위급 임원들의 연봉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규제는→나쁘다’의 공식만을 가히 전체주의적으로 떠받들어 왔고, 그 덕분에 지난 몇십 년간 겉으로는 모두가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생산-소비된 상품과 서비스들의 본질적 효용 총량에 비해 그 금액이 물신의 권능에 의해 굉장히 부풀려졌음에 틀림없다는 점에서, 결국 언젠가 꺼질 크나큰 거품이다. 그리고 이 버블샤워 속에서 누구도 “야 이건 아무리 그래도 다들 너무 비싸”, “왜 싸게 팔아주는 게 고마울 일이야? 전체적으로 깎아야 한다니까?”를 말하지 못한다. 뭐, 누굴 탓하기는 어렵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고 싶은 것뿐이고, 우리는 300원 더 오른 것 때문에 밥을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통제권을 가져와야 한다. 우리가 통제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은혜를 입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통제를 받는 시장이어야 한다.

정말이지 모든 게 이런 식이다. 건물주가 1층에 값싼 카페를 취미생활로 운영하는 것을, 결국 공간주가 계획한 이용 방식대로 낼 돈 다 내 가면서 쓰는 공간인데 ‘누구나 오셔서 자유롭게 어울리는 복합 문화공간’ 운운 생색 내는 것을 최근 들어 좀 지나치게 자주 목격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낀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작동시킬 거라고 믿었지만, 그 이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갓혜자”다. 모든 게 시혜이고 은혜가 됐다.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우리는 각종 가격 결정자들이, 석유 공급자들이, 부동산 소유주들이 착한 마음을 계속 가져 주기를 기도하며 조마조마 살아가는데, 맨큐는 우리가 합리적 경제인입네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이 하락합네 물정 없는 소리를 한다.

많이는 바라지 않고, 일단은 갓혜자가 없이도 걱정 없이 도시락 한 끼를 먹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핵심은 갓혜자가 없다는 데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혜자의 MOM’ 브랜드이기 때문에 값싸서는 안 되며, 지불 용의가 5천 원이 넘지 않는 배고픈 사람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값싸야 한다. 차라리 반찬 수를 줄일지언정 말이다. (양을 늘려주는 대신 가격을 올려 받는 것도 실제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 굉장히 위선적이라고 느낀다. 아 ㅅㅂ 그니까 양은 됐고 액수나 좀 맞추자고! 내가 정말 양이 부족해서 이러는 거면 두 끼 값을 모아다가 9900 고기뷔페를 가서 한번에 찢어지게 처먹겠지 여길 오겠냐 이 개자식들아!)

생각나는 방안이 최고가격제 뿐이긴 한데,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아무튼지간에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니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자본의 신격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는 무산자들이 자본으로부터 일방적이고 임의적인 신적 은혜를 구하게 된 지금의 상황인데, 그 단적인 사례가 ‘GS25 god혜자 도시락’인 것이다. 우리 이거보다는 좀 덜 상스럽게, 쪼끔만 더 성스럽게 살면 안 될까? 일단 김혜자 선생님 당사자 입장에서, 모두가 자기 이름 앞에 ‘god’을 붙여 부르면서 도시락이나 깨작거리는 꼴이 얼마나 씁쓸하고 부담스러우시겠느냐 말이다. 진열대에 뻔뻔스럽게 자화자찬하듯 붙어 있는 “갓혜자, 다 아시잖아요” 공식 POP를 보고 있는 내가 이다지도 거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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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연예인들의 못난 행태를 비판하고 욕하고 싶어질 때마다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걸 당신의 눈앞에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도 굳이 테이프에서 잘라 와 ‘살려서’ 내보내는 이들이 저기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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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임금과 기본소득

급하고 추하게 고도산업화된 나라라서인지 이곳에서의 일〔勤務〕이란 일종의 속죄 내지 고행이 되어 있다. 다들 논다는 것, “숨만 쉬고 사는 것”을 끔찍하게 금기시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공포와 금기시의 이유가 사후적—수입이 없어지거나 생활에 지장이 가거나 파산 상태가 되거나 등등—차원이 아닌 사전적 차원, 즉 사상적/이념적인 차원에 있다는 점이 슬프게 흥미롭다.
모두가 이미 아는 바, “취업 안 하면 어떡해?”의 발화에서 장래 일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의도되지 않는다. “취업을 안 할 수는 없다”라는 무의식적 규범을 스스로에게 돌려 말해 들려주는 것이 의도되어 있을 뿐이다.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냥 넌 그럼 뭐 할 거냐고 묻겠지. 할 거 없으면 취업이나 하라는 식으로.
일해서 돈 벌어 식솔을 부양하는 것이 유일하게 허용된 긍정적 선택지인 마당에 실존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생활이라는 실존을, 인간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자는 것은 그래서 단순 생떼가 될 수 없다. “수입”으로 대표되는 자유자본시장경제를 포기하는 비용보다는, 그 수입의 최저선을 인격적 수준으로 합의하는 비용에 우리는 더 지불 용의가 있다.

2. 패션좌파와 진보적 정치문화의 의제

패션좌파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결국 소비적 문명 자체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어차피 똑같은 아메리카노 사 마실 바에는, 앉아서 돈백만원 벌자고 꼼지락거리는 구차한 삶보다는 자본권력이며 체게바라며 운운 꿈과 이상을 늘어놓는 것이 더 “쿨”한 것이다. 좌파성이 라이프스타일과 분리 가능한 별개체로 기능할 수 있는 이상, 윤서인이 맨날 두드려패는 헬조선 타령 깨시민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온전히 기성 좌파의 직무방기의 결과다. 세상에 싸울 의제가 몇이고 바꿔야 할 삶의 디테일이 몇인데 그저 닭그네 까는 법만 가르친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진보적 정치는 지금의 삶과 세상에 만족하지 말자고, 좀 덜 불가능하게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구체적으로 꿈꾸는 정치여야 한다(잠 안 자고 깨어만 있어서 만사에 예민하게 구는 깨시민질이 아니라).
그렇기에 진보적 의제들은 ‘더 나은 세상’, 나와 동네와 법률과 습관과 전통의 변화라는 것을 구체화해 눈앞에 들이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여기서 흡연을 금지한다, “병신”이라는 표현을 인격모독으로 간주한다, 청년 1인에게 매월 51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한다 같은, “어 그럼 난 뭘 해야 하지”가 튀어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크 이런거 되게 멋있지않냐 넌 몰랐지? 이게 진보야” 같은 거드름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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